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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죽은 뒤에도 남는 흔적, 디지털 유산의 정체

1. 디지털 유산, 디지털 발자국의 축적과 새로운 상속 자산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 논의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과 컴퓨터,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며 다양한 디지털 발자국을 남긴다. 디지털 발자국이란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데이터의 흔적을 말한다. 단순히 게시한 글이나 사진뿐 아니라 검색 기록, 위치 기록, 접속 시간, 디바이스 정보 등 비가시적 데이터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발자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서 개인의 방대한 디지털 프로필을 형성한다. 기업은 이를 분석해 광고 전략을 세우거나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한다. 사망 후에도 이러한 데이터는 대부분 서비스 제공자의 서버에 남아 있게 된다. 특히 AI 기반 추천 시스템에서는 고인의 사용 패턴이 학습 데이터로 남아 서비스 개선에 사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비가시적 디지털 흔적이 법적 관점에서는 명확한 상속 자산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가족이 접근하고 삭제하거나 보관을 요청할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또 기업 입장에서도 사망자의 데이터 삭제 요구에 대해 기술적·법적 제약을 이유로 거부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앞으로 디지털 발자국이 디지털 유산으로서 어떤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2.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페르소나의 등장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페르소나라는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유산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페르소나란 개인의 데이터, 언어 패턴, 음성, 이미지 등을 기반으로 AI가 고인을 모사한 디지털 인격체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는 사망자의 SNS 게시물, 메시지, 영상 등을 학습하여 고인의 말투와 성향을 재현할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가족들이 고인의 AI 챗봇과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의 생전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고인과 비슷한 문체로 메시지를 생성하고, 음성 합성 기술을 통해 고인의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러한 서비스는 유족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윤리적 논란도 크다.

고인의 디지털 페르소나가 본인의 동의 없이 생성될 경우, 개인정보 침해 및 사생활 권리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고인의 의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가 활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앞으로 AI 기술과 디지털 페르소나의 발전 속도에 맞춰 디지털 유산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3. 기업들의 디지털 유산 관리 정책과 소비자 권리

대부분의 글로벌 IT 기업들은 서비스 이용약관에 '계정은 개인에게만 귀속되며, 사망 시 계정은 자동 종료 또는 삭제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현실에서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고인이 유튜브 채널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이나 전자책, 디지털 음원 구매 기록 등의 자산은 서비스 약관상 '소유권이 사용자에게 없다'고 명시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명백히 금전적 가치를 지닌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했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삭제하거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낀다. 특히 국가 간 법령 차이로 인해 미국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는 해당 국가 법령을 따르게 되어, 유족이 접근을 요구할 경우 국제법적 해석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 일부 기업은 점진적으로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는 대표적인 사례로, 사전에 계정 처리 계획을 설정하면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기능 역시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플랫폼에서는 디지털 유산 처리에 대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 소비자는 서비스 가입 시 약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망 후 자산이 어떻게 처리될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또한 서비스 제공자 역시 보다 투명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디지털 유산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죽은 뒤에도 남는 흔적, 디지털 유산의 정체

4. 미래의 디지털 유산: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반 자산의 문제

디지털 유산의 개념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특히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으로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자산이 급증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 구매한 아바타, 가상 토지, 디지털 의류, NFT 형태의 예술품 등은 실질적인 금전적 가치를 가지며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들이 대부분 중앙 서버가 아닌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 분산 저장되기 때문에 기존 상속법으로는 접근과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지갑의 프라이빗 키를 상속받지 못하면 해당 자산은 사실상 영구히 소실된다. 또한 메타버스 플랫폼 내 자산은 서비스 제공 기업의 정책에 따라 영구 유지 여부가 결정되므로, 기업의 존속 여부에 따라 자산이 사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많은 법적 공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족이 메타버스 자산이나 블록체인 기반 자산을 원활히 상속받기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의 자문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인이 생전에 디지털 유산에 대한 구체적인 상속 계획과 지침을 문서화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단 한 번의 접근 정보 손실이 영구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메타버스에서 고인의 아바타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거나, 블록체인 기반 AI 페르소나가 자동으로 콘텐츠를 생성하는 등 디지털 사후 활동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해 디지털 유산과 상속에 대한 새로운 법적·윤리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