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유산 법제화의 시작점부터 달랐던 두 나라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각국의 법제화 흐름은 상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대응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디지털 자산이 법적·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자산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법 분야에서 조기에 논의가 시작됐다. 인터넷 산업의 발달과 개인정보 활용 사례가 많았던 미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이 기존 상속법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조계가 주목했고, 이를 반영한 **RUFADAA(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라는 통일법 모델이 개발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늦게 이루어졌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유산 상속과 디지털 자산의 접점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현재까지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명확한 법제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존 민법과 개인정보 보호법 해석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출발점의 차이는 미국과 한국의 법률 체계, 플랫폼 정책, 유족 권리 인정 범위에서 현재까지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유산 관리를 준비하는 개인과 기업은 이러한 국가별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미국 RUFADAA의 주요 내용과 실질적 효과
미국의 디지털 유산 법제화의 핵심은 RUFADAA다. 2015년부터 미국 변호사협회(ABA)와 통일법위원회(ULC)가 주도해 마련한 이 모델법은 현재까지 50개 주(州) 중 대부분에서 채택·시행되고 있다.
RUFADAA는 크게 다음과 같은 원칙을 규정한다:
(1) 사용자의 생전 의사 우선 원칙
사용자가 서비스 제공자(플랫폼)의 사후 계정 관리 기능(Inactive Account Manager, Legacy Contact 등)을 통해 사후 처리 방침을 설정한 경우, 해당 설정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 즉, 유언장보다 플랫폼 설정이 우선 적용된다.
(2) 법정 대리인의 권한 명시
사용자가 생전 별도 설정을 하지 않았다면, 법원이 지정한 유언 집행자(Executor) 또는 법정 대리인이 법적 절차를 거쳐 디지털 자산 접근 권한을 가질 수 있다.
(3) 계정 유형별 접근 제한 구분
RUFADAA는 콘텐츠(이메일 본문 등)와 로그 데이터(접속 기록 등)를 구분해 접근 권한을 차등 부여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유족의 권리를 절충한 설계다.
RUFADAA의 도입으로 미국에서는 유족이 디지털 유산 처리 과정에서 법적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용자는 사전 설정만 잘 해두면 사후 자신의 의사가 존중받을 수 있고, 유족도 법적 권리 행사 방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또한 미국 플랫폼 기업들은 RUFADAA에 맞춰 자사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관련 기능을 제공하게 된 것도 이러한 법제화의 영향이 크다.
3. 한국의 디지털 유산 법적 처리 현황과 한계
한국은 아직까지 디지털 유산을 명확하게 규율하는 전문 법률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다. 민법 제1005조 이하의 상속 규정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지만, 디지털 자산 특성상 기존 상속법으로는 완전한 처리가 어렵다.
가장 큰 법적 공백은 플랫폼 약관과 상속법의 충돌이다. 한국 내 주요 플랫폼(네이버, 카카오 등)과 글로벌 플랫폼은 대부분 약관에서 계정의 '비양도성'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망자의 계정은 상속 대상이 아니며, 서비스 제공자의 정책에 따라 삭제 또는 제한적인 데이터 제공만 가능하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법은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 범위와 유족의 접근 권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유족이 삭제하거나 조회하려 할 경우, 서비스 제공자가 법적 근거 부족을 이유로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
법원 판례에서도 디지털 유산 관련 명확한 기준은 정립되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경우 최근 몇몇 판례에서 재산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인정되어 상속 대상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메일, SNS 계정, 클라우드 데이터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례가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족은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처리할 때 플랫폼 약관, 민법 해석, 개인정보 보호법 적용 여부 등 복잡한 법적 장애물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가족 간 갈등을 유발하거나, 중요한 디지털 자산이 영구적으로 방치·소멸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4. 대비 전략: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고려한 개인 준비 방법
미국과 한국의 디지털 유산 법적 환경 차이를 고려할 때, 개인은 국가별 법 체계에 맞는 준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RUFADAA의 시행으로 플랫폼 제공자의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구글 Inactive Account Manager, 애플 Legacy Contact, 페이스북 추모 계정 기능 등을 적극 활용해 생전 본인의 사후 처리 의사를 명확히 설정해두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처리 방침을 명시해 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한국에서는 법적 보호 체계가 미비하므로 개인 차원의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우선 주요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유언장 또는 별도 디지털 유산 관리 문서에 구체적인 처리 방침을 명시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암호화폐, 클라우드 데이터, SNS 계정 등 자산별로 법적 리스크와 처리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사용자는 플랫폼의 사후 계정 관리 기능(구글 Inactive Account Manager 등)을 적극 활용하고, 서비스 약관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국내 플랫폼도 점차 사후 처리 기능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기능이 출시될 때마다 설정 여부를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향후 한국도 미국처럼 디지털 유산 관련 법제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법제화 이전까지는 개인의 적극적인 준비와 가족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디지털 유산 관리의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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